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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읽는 영화 산업의 변화와 황혼의 스타 시스템

by nownori 202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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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0년대 말 할리우드의 전환기를 배경으로, 스타 시스템의 쇠퇴와 산업 구조의 변화를 조명합니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틸컷

영화가 영화 산업을 말할 때: 타란티노의 자전적 회고

2019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발표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단순한 범죄극이나 복수극이 아니라, 1969년이라는 시대를 배경으로 할리우드 영화 산업 자체를 조명한 메타적 작품입니다. 영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배우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더블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의 관계를 중심으로, 스타 시스템의 붕괴, 장르 영화의 쇠퇴, 그리고 TV 중심의 매체 전환기를 스냅샷처럼 포착합니다. 또한 실존 인물인 샤론 테이트와 찰스 맨슨 사건을 교차시킴으로써, 당시 대중문화와 폭력성, 산업 이념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합니다. 이 글에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통해 영화 산업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타란티노는 어떤 방식으로 그 변화에 애도 또는 비판을 담아냈는지를 분석합니다.

 

스타 시스템의 쇠퇴와 매체 지형의 전환

1. 릭 달튼: 할리우드식 남성성의 종말 릭 달튼은 과거 웨스턴 TV 시리즈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지만, 점차 시대에 뒤처지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의 불안과 무기력은 단순한 개인의 위기가 아니라, 스타 시스템 전성기 남성 배우들이 느꼈던 정체성 상실과도 연결됩니다. 영화는 릭이 자신이 과거에 했던 악역이나, 새롭게 들어오는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전통적 ‘미국식 영웅상’의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산업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익숙한 얼굴이 더 이상 보장받지 못하는 시장 환경을 반영하는 장치입니다. 릭은 영화 내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되묻는 존재이며, 이는 배우 개인의 고민이자 산업 자체의 방향성 혼란을 반영합니다.

2. 클리프 부스와 무대 뒤 노동의 은유 클리프 부스는 릭의 스턴트맨이자 운전사, 그림자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언제나 배후에서 움직이며,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지만 가장 헌신적인 인물입니다. 클리프는 기술 인력, 하청 노동자, 혹은 제작 현장의 숨은 주역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읽힐 수 있으며, 이들의 존재 없이는 할리우드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조명합니다. 영화가 후반부에 클리프를 ‘실질적인 영웅’처럼 그리는 것은, 산업이 주목하지 않는 이면의 인간성을 복권시키려는 타란티노의 시선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3. 샤론 테이트와 영화의 순수성 영화 속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는 실제 맨슨 패밀리 사건의 희생자이지만, 타란티노는 영화에서 그녀의 죽음을 과감히 비틀고, 오히려 살아남게 만듭니다. 이 선택은 현실의 비극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이상’을 회복하려는 감독의 영화적 제스처입니다. 그녀가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 ‘더 레커닝’을 관람하며 웃고 감동하는 장면은, 관객과 배우, 스크린이라는 삼각 구조가 만들어내는 영화의 원초적 기쁨을 상징합니다. 이 순간은 영화 자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할리우드의 황금기 영화가 지녔던 순수성과 마법을 향한 오마주로 볼 수 있습니다.

 

타란티노의 할리우드는 기억과 환상의 경계에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란티노는 과거를 다시 쓰고, 비극을 수정하며,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다른 가능성’을 펼쳐 보입니다. 이 작품은 영화 산업의 변천사에 대한 회고이자, 하나의 애도이자, 동시에 낭만적 복원의 시도입니다. 릭과 클리프의 관계는 사라진 동료애의 메타포이며, 샤론 테이트는 사라져간 이상적 영화 문화의 잔영입니다. 이 영화는 변해버린 할리우드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가치—우정, 영화의 감동, 작은 기적—을 포착합니다. 타란티노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묻습니다.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세상의 상처를 잠시 잊게 만들 수는 있지 않겠느냐"라고. 이는 산업 변화의 뒤편에서, 여전히 인간적인 영화가 존재할 수 있음을 믿는 한 감독의 시선이자 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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